의외의 의욕과 필연적 반성
아침에 기분 좋은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지난 번 공약을 함께 살펴본 수업의 학생이 보내온 것이었어요. 덕분에 우울할 뻔 한 하루가, 의외의 의욕과 필연적인 반성으로 시작되네요.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쓴다는 이메일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어요.
"저는 과거에 관심이 없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보니 투표하는 기간만 되면 누가 무슨 공약을 세웠는지, 그 사람이 무슨 당인지, 그 당은 무엇을 위해 설립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이 아무에게나 제 소중한 한 표를 내어주곤 했었습니다 ㅠㅠ.. 지난주 금요일,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당에 연혁, 목표 공약 비례대표 등에 대하여 조사 발표를 시키셨고, 평소에 저의 행동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저는 ㅎㅎ 이번 기회를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수업을 아주 열심히 들으며 정치, 정당에 대한 틀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4월 11일 이번 투표 때 제가 정말 원하는 당, 비례대표에게 소중한 한 표를 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아직 결과는 보지 않았지만, 결과에 상관 없이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선생으로서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어쩐지 우쭐해졌어요. 하지만 그런 기분과 달리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친구는 지금 인터넷에서 '민통진빠'들에게 선거 참패의 1등 공신으로 지목당하며 (그야말로 '마녀사냥'이지요) 뭇매를 맞고 있는 '20대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밀어넣은 것은 누구인지, 이제 세상을 중심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정치는 '이념 대립'이라는 저 멀리까지 달려가고 있지만, 현실에선 지역구와 전국구의 차이조차 제대로 교육되고 있지 않습니다. 현실정치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역시 전혀 공유되고 있지 않지요. 그런 '무능한 상태'는 누구의 책임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오늘의 대답은 "선생질 7년 차가 된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투표율이 오르면 삭발을 한다는 둥, 망사 스타킹을 신겠다는 둥, 여러 셀렙들이 설레발을 쳤지만, 진짜 비젼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보고싶었던 건 그런 '흉물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이 선거를 통해 걷게 될 그 '새롭다는 길'에 대한 그림이었겠지요. 결론은 좀 엉뚱하게 튀지만,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겠습니다. 36년을 살면서 대체 어른이 뭔지, 난 언제나 어른이 될른지, 대체 어떻게 해야 그 '어른'이라는 것이 되는지, 늘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캐망'한 선거 한 판과 진심이 담긴 이메일 한 통이 굉장한 깨달음을 주네요. 이 친구가 들었던 수업은 '미래 사회의 평화와 윤리'에 대해 말하는 수업입니다. 다음 수업 시간엔 이 친구들에게 '윤리'란 '관념'이 아니라 '일상'임을 알려주어야 겠습니다.
